동막리
동막리
원래 연천현 현내면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군내면에 편입되었고 1945년 해방 직후에 38선 북쪽에 위치하여 공산치하에 놓였다가 한국전쟁이 끝난 후인 1954년 11월 7일 「수복지구임시행정조치법」에 의거 행정권이 수복되어 오늘에 이른다. 조선 초부터 요업이 번창했던 곳으로 '독막[陶幕, 甕幕]'으로 불리다가, 차츰 어휘가 변하여 '동막'으로 굳어져 '동막리(東幕里)'라 하였다. 현재 2개의 행정리, 4개 반으로 이루어져 있다.
지명유래
- 동막골[東幕洞] : 부물현 동쪽에 있는 마을. 한국전쟁 전에는 전주 이씨(全州李氏)가 많이 살았다고 한다.
- 둔치 : 동막골 동쪽 둔덕에 있는 마을.
- 망근도리 : 동막리 태실 옆에 있는 마을. 지형이 망건처럼 생겼다 하여 유래된 이름이다.
- 벙골[富興洞] : 자라바위 동쪽에 있던 마을. 한국전쟁 전에는 강릉 김씨(江陵金氏)가 살던 마을이었다.
- 부물현[復武夷洞] : 임장서원 터 남서쪽에 있는 마을. 지형이 중국의 주부자(朱夫子)가 생장한 무이촌과 흡사하다 하여 '또 하나의 무이촌'이라는 뜻의 부무이동으로 명명하였다 한다. 713년(숙종 39)에 사액된 임장서원은 이러한 이유로 주자를 봉향하기도 했다. 한국전쟁 전에는 곡성 임씨가 큰 집성촌을 이루었던 곳이다.
- 삼봉동(三峰洞) : 중수꾸미 북쪽에 있던 마을. 세 개의 봉우리가 있다 하여 지어진 이름이라 한다.
- 샘골[泉谷] : 태봉 남쪽에 있는 마을. 골짜기를 이루고 있었으나 한국전쟁이 끝난 후 마을이 새로 들어섰다고 한다.
- 왜둔치[瓦屯洞] : 여내골 동쪽에 있던 마을. 기와를 굽던 곳이라 하여 '기와말'이라고도 불리웠으며, 현재는 군 유격장이 있다.
지역명칭 설명
- 가마소 : 독조골에 있는 소. 모양이 가마솥 같다고 한다.
- 감투봉 : 수리봉 북쪽에 있는 봉우리.
- 기차바위 : 가마소 동쪽에 기차처럼 생긴 바위. '줄바위'라고도 한다.
- 낚시내골 : 둔치 동쪽에 있는 골짜기. 어떤 사람이 이 곳에서 낚시를 즐겼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 너벅소 : 풍혈 북쪽, 아미천에 있는 넓은 소.
- 도장골 : 태봉 동쪽에 있는 골짜기. 지형이 도장 주머니처럼 생겼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 독조골 : 동막동에서 새매기까지 있는 큰 골짜기.
- 동이점모퉁이 : 삼봉동 남쪽에 있는 모퉁이. 옛날에 동이를 굽던 요지가 있었다 하여 지어진 이름이라 한다.
- 등정거리 : 동막리산성에서 샘골로 뻗어 내려온 산등.
- 반나저리소 : 너벅소 아래에 있는 소.
- 밤나무골 : 자가골 맞은 편에 있는 골짜기.
- 버섯바위 : 독조골 중앙에 있는, 버섯처럼 생긴 바위.
- 벌바위골 : 청소년수련원 동쪽에 있는 골짜기. 어떤 사람이 벌을 치던 곳이라 하여 지어진 이름이라 한다.
- 벌봉 : 동막동 동쪽에 있는 바위 봉우리. '덜봉'이라고도 한다.
- 범바위 : 풍혈 서쪽에 있는 바위. 부엉이집이 있다 하여 '벙바위'로도 불리운다.
- 법화골[法華洞] : 불견이고개 동쪽에 있는 골짜기.
- 비아골 : 임장서원지 동쪽에 있는 골짜기.
- 새매기 : 독조골 막바지에 있는 골짜기.
- 서낭댕이 : 용수꾸미 동쪽에 있던 서낭당 터. 지금은 군부대가 들어서 있다.
- 성재[城嶺] : 벙골에서 부곡리 가마골로 넘어가는 고개. 동막리산성의 뒤에 있는 고개라 하여 지어진 이름이다.
- 수리봉 : 새매기 북쪽 옥산리와 경계에 있는 봉우리. 높이 477m
- 신주바위 : 왜둔치 남쪽, 아미천변에 수직으로 솟은 넓고 큰 바위.
- 아미천(峨嵋川), 동막골개울, 구곡천(九曲川) : 신서면 내산리의 고대산에서 발원하여 차탄천으로 합류하는 준용하천으로, 한국전쟁 전에는 동막리 입구에서 내산리 심원사까지 이르는 동안 열두 번을 곡류한다 하여 '열두구비 개울' 이라고도 불리웠다.
- 애기봉 : 샘골 남쪽, 통현리와 경계에 있는 작은 봉우리.
- 애미내벌[峨嵋川坪] : 부물현 남쪽에서 차탄천까지 펼쳐진 들. 아미천이 옆에 있다하여 지어진 이름이다.
- 양금재봉(養金財峰) : 동막동 북쪽에 있는 뾰족한 봉우리. 높이 310m. 일설에는 금이 많이 매장되어 있다 하여 지어진 이름이라 하지만 중국의 고부현 무이촌과 지형 조건이 흡사하다 하여 지명을 그대로 옮겨와 명명한 경우이다. 그러나 중국 무이촌의 한자표기는 현재의 표기와는 다른 '양금령(陽琴嶺)'이다.
- 여내골 : 감투봉 동쪽에 있는 큰 골짜기.
- 열두고팽이 : 수리봉 동쪽에 있는 골짜기. 감투봉에서 뻗어 내린 산등이 열두 개가 된다 하여 지어진 이름이라 한다.
- 옛날소 : 서낭댕이 남쪽에 있는 소. 현재 매몰되었다.
- 오리터 : 임장서원 터 서쪽에 있던 큰 연못. 예전에는 오리들이 떼지어 놀던 곳이었으나 지금은 논으로 변해 있다.
- 오피고개 : 독조골에서 삼봉동으로 넘어다니던 고개. 한국전쟁 이후 군부대에서 관측소(OP)를 세웠다 하여 지어진 이름이다.
- 옻우물 : 샘골 서쪽에 있는 약수. 옻오른 데 효험이 있다 한다.
- 용수꾸미 : 부물현 동쪽, 아미천에 있는 약 4m 깊이의 소. 큰 바위굴이 있어 이무기가 살았다는 전설이 전해 왔으나, 현재는 매몰되어 옛 모습을 찾아볼 수 없다.
- 자가골 : 양금재봉 동쪽에 딸린 골짜기.
- 자라바위 : 삼봉동 북쪽 아미천에 있는, 자라 모양의 큰 바위.
- 작은왜골 : 왜둔치 동쪽에 있는 골짜기.
- 장가물 : 용수꾸미 동쪽에 있던 우물. 장씨 성을 가진 큰 부자가 이곳 약수를 매일 마셨다 하여 지어진 이름이다. 지금은 매몰되어 아무런 흔적도 남아 있지 않다.
- 중수꾸미 : 삼봉동 앞에 있는 큰 소.
- 지당물 : 현 동막리 유원지에 있는 소. 예전에 이 곳에 절이 있어 이 소의 물로 매일 불전에 다례를 올렸다 하여 지어진 이름이라 한다.
- 찬우꾸미[?翠巖] : 삼봉동에 있는 명승지. 『광무읍지』에는 “찬취암은 연천관아에서 동쪽으로 10리쯤에 있는 경승지로 층층이 쌓여 있는 크고 험한 바위들이 서로 마주 대하며 서 있는 형상인데 일명 '삼봉암'이라고도 한다. 주위의 골짜기는 깊고 그윽한데 그 사이를 흐르는 아미천의 깊고 푸른 물은 바위 위에 피어난 많은 꽃들과 골짜기의 푸른 소나무들이 어우러져 경치는 가히 선경이라 할 만한 곳이다. 또한 이 곳에는 심한 가뭄이 들면 연천현감이 보개산에 기우제를 지내는 기우단이 있다(?翠巖在縣東十里許層巖鼎峙一名三峰巖 洞壑深邃溪潭湛泓巖花澗松景致殊絶有祈雨壇)”라고 적혀 있다. 또한 『동국여지지(東國輿地志)』에는 연천현감직에 있었던 윤두수가 이 곳의 경치에 매료되어 '찬취암'이라 명명했다는 기록도 있다(?翠巖在寶盖山上高聳蒼翠通望遠近本朝尹斗壽縣 監時遊其上名之). 이밖에 조선 후기 연천현감을 역임했던 신유한(申維翰)의 문집인 『청천집(靑泉集)』에 있는 「찬취암기(?翠巖記)」, 「보개산천기우문(寶盖山川祈雨文)」 등의 기록에도 이 곳에 대하여 상세히 나타나 있다. 최근에는 개발되어 많은 피서객이 찾아오는 유원지로 자리잡았다.
- 큰골 : 동막동 북쪽에 있는 골짜기.
- 큰왜골 : 왜둔치 동쪽에 있는 골짜기. 작은왜골에 상대되는 지명이다.
- 풍혈(風穴) : 동막동 남쪽에 있는 천연 바위굴. 전체 깊이 6m, 높이 2.2m. 무더운 여름철에 얼음이 녹지 않을 정도로 찬 공기가 흘러나오고, 반대로 겨울철에는 그 주위에 얼음이 얼지 않고 따뜻한 김이 솟아오르는 기현상을 보이는 곳이라 한다. 일제강점기 때에는 이 곳에다 잠종(蠶種) ,000여 매를 저장했다고 한다.
- 피묵골 : 벌바위골 남쪽에 있는 골짜기.
- 항막술 : 양금재봉 남쪽에 있는 골짜기. '항막골'으로도 불리운다.
- 호랭이굴 : 자가골 남쪽에 있는 바위굴. 예전에 호랑이가 살았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