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서리
강서리
본래 연천군 서면 지역인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계명리*군영리*영정리를 병합하여 강서리라 하여 왕징면에 편입되었다. 1945년 해방 직후 38선 이북이 되어 공산 치하에 놓이게 되었고, 한국전쟁 후인 1954년 11월 17일 「수복지구임시행정조치법」에 의하여 행정권이 수복되었지만, 휴전선과 인접한 민통선 지역으로 현재 민간인이 살지 않고 출입 영농만 가능한 곳이다.
지명유래
- 갑상골[甲上洞] : 안터 남쪽에 있는 마을.
- 고능동(古陵洞) : 계명리 위에 있던 마을. 큰 고분이 있다 하여 지어진 이름이라 하나 확인되지 않고 있다.
- 군영장거리(軍營場巨里), 군영리(軍營里) : 은거당터 서쪽에 있던, 왕징면의 옛 소재지. 조선 후기 연천 현감을 역임했던 신유한(申維翰, 1681∼1752)의 『청천집(靑泉集)』에 실려 있는 「관허상국은거당국기(觀許相國恩居堂國記)」에는 “이 마을은 고려 태조 왕건이 한때 군사를 주둔시켰던 곳으로 마을 사람들은 군영이라 부른다(村以高麗太祖駐兵處俗呼軍營)” 라고 이곳의 유래를 적고 있다. 조선시대에는 연천현 서면, 행정구역이 개편된 일제강점기 때에는 왕징면의 행정*교육*치안의 중심지였고, 연천*삭녕*장단 지역에서 생산되는 농특산물이 모여들어 장이 형성되었던 곳이다. 그러나 한국전쟁으로 폐허가 되어 지금은 이 일대 모두가 농경지로 변해 있다.
- 기와말[瓦村] : 하오고개 서쪽에 있던 마을. 예전에 기와집이 있었다 하여 지어진 이름이다.
- 끄드르미[携引洞] : 연천현 당시 가장 서쪽 끝에 위치해 있는 마을.
- 닭이울[鷄鳴里] : 방축골 안에 있던 마을. 산 안에 있는 마을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 지명이다.
- 대터[大垈] : 기와말 옆에 있던 마을.
- 돌모루[回村] : 달구지 동쪽에 있던 마을. 산부리 끝에 있는 모퉁이 지형이어서 이 곳을 굽어 돌아가야 한다 하여 지어진 이름이라 한다.
- 매지울[梅谷洞] : 녹봉 북쪽에 있던 마을. 웃매자울*아랫매지울로 나뉘는 이 곳은 산의 고어인‘뫼'*‘메'가 한자의 ‘매(梅)'로 소리빌기를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꼭대기라는 뜻의‘말'이 매'로 변한 것이다. 말 > 몰 > 모리 > 모이 > 뫼 > 매, 즉 매지울의 본래 의미는 ‘산 마을'또는‘산골 마을'이다.
- 벌발[野村] : 여시울 동쪽 벌판에 있던 마을
- 분투골[盆土洞] : 오방터 서쪽에 있던 마을. 항아리처럼 입구가 좁고 안이 넓은 지형이라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오방터와 이 마을에 한국전쟁 전까지 함열 남궁씨(咸悅南宮氏)가 집성촌을 이루고 살았다고 한다.
- 안터[內垈] : 돌모루 남쪽에 있던 마을.
- 여시울[六士洞] : 오방터 동쪽에 있던 마을. 예전에 여섯 명의 선비가 살았던 곳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한국전쟁 전에는 전의 이씨와 제주 고씨가 집성촌을 이루고 살았다 한다.
- 영정동, 영정골[永貞洞] : 은거당터 동쪽에 있던 마을. 이 곳의 마을 뒤에 있는 산세가 길고 곧다 하여 지어진 이름이다. 『여지도서』에는 “영전리(營殿里)”로도 표기되어 있다.
- 오방터[五方垈] : 분투골 동쪽에 있던 마을.
- 웃장거리 : 방축골 입구에 있던 마을. 군영장거리의 위에 있어 지어진 이름이다.
지역명칭 설명
- 강가마골 : 흔두터 옆에 있는 골짜기.
- 골말[谷村] : 오방터와 여시울 사이에 있는 골짜기. 예전에 마을이 있었다고 한다.
- 금바위 : 칼바위 아래에 있는 바위.
- 녹봉(鹿峰) : 은거당터 뒤에 있는 산. 허목이 이곳에서 만년을 보낼 때 이 산에 사슴이 많이 내려왔다 하여 지어진 이름이라 한다.
- 닥채 : 새터 남쪽에 있던 집터. 일제강점기 때까지도 닥나무를 가공하여 한지를 만들었던곳이다.
- 달구지 : 산제당산 북쪽에 있는 골짜기.
- 덕절이[德土洞] : 군영장거리 남쪽에 있는 골짜기. 동중리의 덕절이와 연결되어 있으나 유래는 확실하지 않다.
- 독정골 : 새터골 서쪽에 있는 골짜기.
- 막골 : 영정동 남쪽에 있는 골짜기.
- 말고개 : 달구지에서 고왕리로 넘어다니던 고개. 크다는 뜻으로 쓰였던 고어 ‘말'에서 유래된 지명으로, 장단과 연천 사이에 있는 ‘큰 고개'라는 의미로 쓰였을 것으로 보인다. 현재 남방한계선이 지난다.
- 문좌실(수)고개[文座峙] : 고능동에서 고잔하리 문좌수골짜기로 넘어가는 고개.
- 방축골[防築谷] : 웃장거리에서 문자수고개까지 있는 큰 골짜기. 예전에 농사에 쓰기 위하여 물을 가두어 놓는 방죽이 있었다고 한다.
- 백고개 : 기와말 동쪽 강내리와 경계에 있는 고개.
- 보광고개[寶光峴], 달구지고개 : 달구지에서 고잔하리 보광동으로 넘어다니던 고개. 옛날에 소달구지가 많이 다녔다 하여 지어진 이름이라 한다.
- 보통학교자리 : 허목 묘 앞에 있던 일제강점기 때의 보통학교 터.
- 비냥당골 : 벌말 남쪽에 있는 골짜기.
- 산제당산 (山祭堂山)① : 끄드르미 마을 북쪽에 있는 산. 높이 208m. 한국전쟁 전까지도 끄드르미 마을에서 산제를 올렸던 곳으로, 고왕리*작동리와 경계가 된다.
- 산제당산② : 영정동 뒤에 있는 산. 매년 이 산 정상에 있는 부채 모양의 큰 소나무 아래서 소를 제물로 하여 산제를 올렸다고 한다.
- 삼봉(三峰) : 고능동 북쪽, 고잔하리와 경계에 있는 봉우리. 높이 258m. 정상이 세 개의 봉우리로 되어 있다 하여 지어진 이름이다.
- 새말고개 : 끄드르미에서 작동리 새말로 넘어다니던 고개.
- 새터골 : 막골 서쪽에 있는 골짜기.
- 성주골 : 끄드르미 남쪽에 있는 작은 골짜기.
- 씩시골 : 벌말 동쪽에 있는 골짜기. 유래는 자세하지 않다.
- 아랫터골 : 독정골 서쪽에 있는 골짜기.
- 안끄드르미 : 끄드르미 남쪽에 있는 작은 골짜기.
- 월계천(月溪川) : 달구지에서 발원하여 강서리 중앙을 지나 강내리의 임진강으로 합류하는 개울.
- 윗터골 : 아랫터골 위에 있는 골짜기.
- 작은분투골 : 오방터 서쪽에 있는 골짜기.
- 잔바닷골고개 : 군영장거리에서 동중리 가는골로 넘어다니던 고개.
- 잔바닷골등 : 잔바닷골고개 옆에 있는 산등.
- 장승고개 : 덕절이에서 동중리 덕절이로 넘어다니던 고개. 예전에 어떤 사람이 처갓집을 다녀오다 고갯말에 있는 장승 옆에서 장모가 싸준 닭고기를 배불리 먹고난 후 그 뼈를 모아 놓고 종이에다 계골장군(鷄骨將軍)이라 써서 그 옆에 놓았다고 한다. 그런데 그후 이 곳에 호랑이*도깨비가 자주 나타나 사람의 통행이 어렵게 되자, 그 사람이 다시 치웠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 정가터골 : 홍산이고개 서쪽에 있는 골짜기. 예전에 정씨가 살았다고 한다.
- 칼바위 : 여시울 골짜기 안에 있는 큰 바위. 칼날처럼 서 있다 하여 지어진 이름이다.
- 하오고개 : 와말 동쪽에 있는, 강서리에서 강내리 능말로 넘어가는 고개.
- 할미당골 : 은거당터 동쪽, 영정동에 있는 골짜기. 예전에 늙은 할미가 살았다 하여 붙은 이름으로, 웃당골과 아랫당골로 나뉜다.
- 홍산이고개 : 강서리와 북삼리 사이에 있는 고개.
- 활터거리 : 하오고개 남쪽에 있는 골짜기. 예전에 활을 쏘며 무예를 연마하던 훈련장이 있었던 곳이라 한다.
- 흔두터 : 여시울 남쪽에 있는 골짜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