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정리
냉정리
본래 삭녕군 서면 지역으로, 찬 우물이 있어 '냉정리'라 하였는데, 1914년 4월 1일 일제의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연천군 서남면에 편입되었다. 1945년 해방과 동시에 38선 북쪽에 위치하여 공산 치하에 놓였다가 한국전쟁 후에도 휴전선 북쪽에 위치하여 현재 이북지역에 속해 있으나, 1963년 1월 1일 법률 제1178호인 「수복지구와 동인접지구의 행정구역에 관한 임시조치법」에 의거, 왕징면에 편입되어 있는 법정리이다. 행정리와 반이 설치되지 않은 미입주지구에 해당한다.
지명유래
- 남성동(南星洞) : 응달말 동쪽에 있던 작은 마을.
- 너더리[板橋洞] : 아랫말 동쪽에 있던 마을. 예전에 삭녕과 장단 구화장과 연결되는 대로에 해당하여 항상 인마의 통행이 많은 곳이었다. 이 곳을 가로지르는 하천에 큰 나무다리를 놓았다는 사실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 지명은‘넓은 들'의 뜻인‘너덜'이 넓들 > 널들 > 너들 > 너덜(너더리)로 변한 것이며, 한자로 표기하는 과정에서 ‘판교'가 된 것이다. 마을 주변 산 속에 비교적 넓은 들이 위치하고 있다. 한국전쟁 전에는 주막이 있어 ‘주막거리'로도 불리웠으며 15호가 마을을 이루었다.
- 아랫너더리 : 너더리 남쪽에 있던 마을. 한국전쟁 전에는 15가구가 살았다.
- 아랫말[下村] : 냉정리 중앙에 있던 마을. 남성동의 아래에 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 웃말[上村] : 냉정리의 가장 서쪽 위에 있던 마을. 한국전쟁 전에는 파평 윤씨가 15호 살았던 곳이다.
- 응달말 : 안골 북쪽, 응달에 있던 작은 마을.
- 청룡동(靑龍洞) : 웃말 동쪽에 있던 마을. 한국전쟁 전에는 20여 호가 살던 곳이며. ‘청룡안'이라는 다른 이름으로도 불리웠다.
- 큰말[大開洞] : 응달말 북쪽에 있던, 냉정리에서 가장 큰 마을. 한국전쟁 전에는 정선 전씨(旌善全氏)만 40여 호 집성촌을 이루었던 곳이다.
지역명칭 설명
- 길마채 : 물미치에서 가천리의 가재울로 통하는 고개.
- 물미치[水峴] : 너더리 북쪽, 석둔리로 넘어가는 긴 고개. 고갯마루 부근에 있는 찬 샘에서 많은 양의 물이 솟아나서 물이 흔한 곳이라 하여 ‘물미치'로 이름지어졌다. 냉정리의 유래도 이 곳으로 인하여 지어진 이름이라 한다. 한국전쟁 전에는 이 고개 아래에 작은 마을이 있었다 한다.
- 안골 : 너더리 서쪽에 있는 골짜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