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곡리
부곡리
본래 강원도 철원도호부 관인면의 하리(下里) 지역인데, 1906년(광무 0) 9월 24일 칙령 제49호에 의하여 연천군에 편입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부곡리라 하였으나 1945년 해방과 동시에 38선 북쪽에 위치하여 공산 치하에 놓이게 되었다. 1954년 1월 17일 「수복지구임시행정조치법」에 의거하여 행정권이 수복되었고, 1983년 2월 5일 「대통령령」 제11027호에 의하여 포천군에 편입되었다가, 1989년 월 일 「대통령령」 제12577호에 의하여 연천읍에 편입되어 오늘에 이른다. 부곡리는 한국전쟁 이후 전 지역이 군사보호구역으로 편입된 곳으로 민간인이 살지 않아 행정리와 반이 설치되어 있지 않다.
지명유래
- 문지터[文址基] : 다락터 서쪽에 있던 작은 마을.
- 샛말 : 다락터와 문지터 사이에 있던 작은 마을.
- 안터[內垈] : 가마봉 남쪽에 있던 마을.
- 점말[店村, 沙器幕] : 두태봉 북쪽에 있던 마을. 조선 초기에 번성했던 분청사기 가마터가 있던 곳이라 한다.
- 지장골[地藏洞] : 점말 북쪽에 있던 마을. 신라 말에서 조선 초까지 지장사가 있었다 하여 지어진 이름이다.
- 칡목이[葛項洞] : 가마골 동쪽의 벌판에 있던 마을. 예전에는 칡덩굴이 많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한국전쟁 전에는 인동 장씨(仁同張氏)가 많이 살았다고 한다.
지역명칭 설명
- 가는골 : 큰농바위 동쪽에 있는 가는 골짜기.
- 가마골[釜谷] : 재인폭포 북쪽에 있는 큰 골짜기. 예전에 골짜기 안에 숯가마가 많았기 때문에 가마골이라 붙여졌다고 한다. 원래는 ‘크다'는 뜻의 고어 ‘감'이 골과 합하여 ‘감골'이 되었다가 매개모음 ‘ㅇ'를 개입시켜 ‘감의골'이 되어 ‘큰 골짜기' 라는 뜻인 ‘가마골'로 명명되었다. 이것이 한자로 지명을 옮기는 과정에서 ‘부곡(釜谷)'으로 표기된 것이다. 또한 가마골은 재인폭포에서 다라미고개까지의 ‘큰골'과 그 왼쪽인 ‘작은골'을 합친 전체의 큰 골짜기 이름이기도 하며, 한국전쟁 전에 전주 이씨들이 살았고, 관인면이 철원군에서 연천군으로 편입되면서 최초의 관인면사무소가 설치된 곳이기도 했다.
- 가마봉[釜峰] : 재인폭포 동쪽에 있는 가마처럼 생긴 바위 봉우리. 높이 282m.
- 가마소[釜沼] : 재인폭포 위에 있는 소. 가마솥처럼 동그랗다 하여 지어진 이름이다.
- 가치목[加齒項] : 큰골과 지장골 사이에 있는 목.
- 가치목골[加齒項谷] : 원적사지 동쪽, 가치봉 밑에 있는 골짜기.
- 가치목골 : 뒷골 북쪽, 가치봉 쪽으로 있는 골짜기.
- 가치봉(加齒峰) : 가치목 남쪽에 있는 바위 봉우리. 치아처럼 생긴 길고 큰 바위들이 봉우리를 이루고 있다 하여 지어진 이름이다.
- 개옻약수 : 문지터 남쪽에 있는 한탄강 절벽의 약수. 많은 물이 폭포처럼 장관을 이루며 떨어지는 약수폭포는 한국전쟁 전까지도 피부병에 효험이 있다 하여 많은 사람이 찾아왔다고 한다.
- 검은박골 : 지장사지 북쪽에 있는 골짜기.
- 과바위[過岩] : 큰골 가운데 있는 큰 바위. 예전에 다라미고개로 올라가자면 바위 밑을 모퉁이를 지나가듯 돌아가야 한다 하여 지어진 이름이다. 지금은 바위 옆으로 직선의 비상도로가 나 있다.
- 과바위골짜기 : 과바위 동쪽에 있는 골짜기.
- 구들떼기 : 두태봉 동쪽에 있는 둔덕. 한국전쟁 전까지도 이 곳에서 나는 구들돌을 주변 마을에서 많이 캐 갔다 하여 지어진 이름이다.
- 나막골 : 외나무다리골 동쪽에 있는 골짜기.
- 낫가리바위[露積岩] : 가마봉 남쪽, 한탄강변에 있는 큰 바위. 모양이 곡식을 쌓아둔 노적가리 같다 하여 지어진 이름이다.
- 다라목골 : 지튼골 북쪽, 다라미고개에 딸린 골짜기.
- 다라미고개 : 가마골에서 신서면 내산리 절골로 통하는 높고 큰 고개. 고구려어 계통에 많이 나오는 산의 옛 음인 ‘달'이 달아 > 다라로 음이 변하는 과정에서 산의 원음인 ‘뫼'가 발음 습관에 따라 변한 ‘미'를 합하면서 달뫼가 다라+미+고개로 합성되어 ‘다라미고개', 즉 ‘높이 솟아 있는 산 사이로 있는 고개'의 뜻을 가지게 되었다. 지금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다라미현(多羅美峴)'으로 한자 표기가 되어 있다.
- 다락터[樓垈] : 한탄강 북쪽 고려고분군 주위에 있던 마을. 예전에 누각이 있던 곳이라 하여 지어진 이름이라 한다. 원래의 의미는 산의 고어 ‘달'에 그 어원을 두고 있다. 종자산*가마봉*보장산 등이 주위에 위치하고 있는 보개산 남쪽의 산촌으로, 어휘가 변하여 오늘의 다락터로 불리우게 되었음을 알 수 있다. 달터 > 달아터 > 다라터 > 다락터. 한국전쟁 전에는 안동 권씨(安東權氏)가 마을을 이루고 살았다.
- 덜거렁바위 : 지장동 입구에 있는 바위. 높이 약 8m. 바위 상단에 천연적으로 올려져 있는 바위 모양이 금방이라도 떨어질 것같이 들려 있다 하여 지어진 이름이다.
- 돌고개 : 과바위 북쪽에 있는 고개. 원적사지까지 오르는 일부 구간에 돌이 많다하여 지어진 이름이다.
- 두태봉(頭泰峰) : 칡목이 동쪽에 있는 봉우리. 정상 부분이 큰 바위로 이루어져 있다 하여 지어진 이름이다.
- 뒷골 : 점말 서쪽에 있는 골짜기.
- 명지미기 : 무당소 서쪽에 있는 골짜기.
- 무당소 : 작은골 중앙에 있는 소.
- 문바위골 : 큰고개 동쪽에 있는 골짜기.
- 병풍바위[屛風岩, 赤壁] : 옹장골 안에 있는 병풍처럼 생긴 큰 바위. 바위 색깔이 붉어 ‘붉은벽낭'으로도 불리며, 한국전쟁 전까지도 호랑이가 많이 나타났다고 한다.
- 북대(北臺) : 삼형제바위 서쪽에 있는 봉우리. 포천군 관인면 중리와 경계에 있다.
- 불당골[佛堂谷] : 명지미기 북쪽에 있는 골짜기. 암자가 있던 곳이라 하여 지어진 이름이다.
- 불선바위골 : 옹장골 안에 있는 골짜기. 큰 바위가 부처가 서 있는 모습과 닮았다 하여 지어진 이름이다.
- 사기막고개[沙器幕峴] : 부곡리와 포천군 관인면 중리 경계에 있는 고개. 사기점으로 넘어다니는 고개라 하여 불리워지는 이름이다.
- 사기터골 : 백자요지 옆에 있는 골짜기. 조선 후기 경영되었던 사기점이 있었다 하여 지어진 이름이다.
- 사태나무골 : 문바위골 남쪽에 있는 골짜기.
- 산제당터 : 해골 북쪽에 있는 산제 터. 한국전쟁 전까지 가마골 주민들에 의해 매년 정월 초에 소를 잡아 산제를 올렸던 곳이다. 특히 이 곳에는 큰 소나무 한 그루가 있었는데, 한국전쟁이 일어나기 이틀 전에 원인 모르게 부러져 전쟁을 예고한 영험한 나무였다고 한다.
- 삼형제바위[三兄弟岩] : 지장동 북쪽에 우뚝 솟은 세 개의 바위. 마치 삼형제가 나란히 서 있는 것 같다 하여 지어진 이름이다.
- 새 대기 : 가치봉 남쪽에 있는 넓은 평지. 억새풀이 많이 자라는 곳이 되어 지어진 이름이다.
- 성령(城嶺) : 작은골에서 동막리 범골로 넘어가는 고개. 동막리산성의 뒤에 있는 고개가 된다하여 지어진 이름이다.
- 성지골 : 큰골 입구에 있는 골짜기.
- 수내미 : 큰골 가장 북쪽에 있는 골짜기.
- 숫돌바위 : 과바위 위에 숫돌처럼 생긴 바위.
- 옹장골 : 지장동 서쪽에 있는 골짜기.
- 외나무다리골 : 과바위 북쪽에 있는 골짜기. 예전에 이 골짜기 입구에 외나무다리가 있었다 하여 지어진 이름이라 한다.
- 일방아골 : 무당소 북쪽에 있는 골짜기.
- 작은골 : 가마골 안에서 서쪽으로 있는 큰 골짜기.
- 작은농바위골, 작은은바위골 : 성지골 북쪽에 있는 골짜기. 골짜기 안에 농짝 같은 큰 바위가 있다.
- 작은두묵골 : 점말 남동쪽에 있는 골짜기.
- 재인고개[才人峴] : 재인폭포에서 칡목이로 넘어가는 고개.
- 재인폭포(才人瀑布) : 가마골 입구에 있는 폭포. 높이 8.5m. 이 폭포에는 고을 원님의 탐욕으로 인한 어느 재인의 죽음과 그 아내의 정절을 담은 이야기가 전해 온다. 『여지도서』는 다른 전설을 싣고 있는데, 옛날 어느 원님이 재인 아내의 미색을 탐하여 현재의 재인폭포에서 재인으로 하여금 광대줄을 타게 한 후 줄을 끊어 죽게 하고 재인의 아내를 빼앗으려 하였다. 그러나 절개 굳은 재인의 아내는 남편의 원수를 갚기 위해 원님의 코를 물어 뜯고 자결하였다고 한다. 그 후부터 원님의 코를 물었다 하여 ‘코문리'라 칭하게 되었으나 차츰 어휘가 변하여 ‘고문리(古文里)'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한편으로 같은 책 연천현 산천조에는, “재인폭포는 연천관아에서 동쪽으 로 20리 거리인 원적사(圓寂寺) 동구에 있는데, 벽립해 있는 양 절벽 사이로 수십 길 높이를 수직으로 흐르며 떨어진다. 옛날에 재인이 마을 사람과 함께 폭포 아래에서 놀다가 그 마을 사람 아내의 미모가 뛰어난 고로 흑심을 품은 재인이 자기 재주를 믿고 그 자리에서 장담하며 말하기를 ‘이 절벽 양쪽에 외줄을 걸고 내가 능히 지나갈 수 있다'고 하였다. 마을 사람은 재인의 재주를 믿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자기 아내를 내기에 걸게 되었다. 잠시 후, 재인은 벼랑 사이에 놓여 있는 외줄을 타기 시작하는데, 춤과 기교를 부리며 지나가는 모습이 평지를 걸어가듯 하자, 재인이 반 정도 지났을 때 마을 사람이 줄을 끊어 버려 재인을 수십 길 아래로 떨어져 죽게 하였다. 이 일로 이 폭포를 재인폭포라 불리우게 되었다 한다”고 기록되어 있다. 현재 재인폭포는 보개산과 한탄강이 어울리는 주위의 빼어난 경관과 맑은 물로 인하여 사시사철 방문객들이 끊이지 않는 명승지이다.
- 절터밭골 : 지장사지 옆에 있는 골짜기.
- 종자산(種子山) : 두태봉 동쪽에 있는 산. 높이 642.8 m. 포천군 관인면 중 2리와 경계에 있다. 아주 옛날 온 세상이 물바다가 되었을 때 산 정상이 간장종지[種子] 만큼 남았다 하여 지어진 이름이다.
- 지튼골 : 원적사지 북쪽에 있는 작은 골짜기.
- 찍쩍골 : 과바위 서쪽에 있는 골짜기.
- 찬물내기 : 병풍바위 옆에 있는 좁은 골짜기. 얼음처럼 차가운 약수가 있다 하여 지어진 이름이다.
- 초막골[草幕谷] : 가는골 남쪽에 있는 골짜기. 예전에 초막이 있었다 한다.
- 총대여울 : 안터와 포천군 창수면 신흥리 사이에 있는 한탄강 여울.
- 큰고개 : 지장골에서 포천군 관인면 중리의 큰골로 넘어가는 고개.
- 큰골 : 재인폭포에서 다라미고 개 정상까지 있는 큰 골짜기.
- 큰농바위, 큰은바위골 : 작은농바위골 위에 있는 골짜기.
- 큰두묵골 : 두태봉 동쪽에 있는 골짜기.
- 퉁막골 : 작은골 안에 있는 골짜기.
- 퍼렁소 : 원적사지 남쪽에 있는 소. 약 5m 높이의 퍼렁소폭포 밑에 있는 이 소는 한국전쟁 전에 가마골 내에서도 가장 빼어난 경치를 자랑했던 곳으로, 이 소에 명주실을 담그면 고문리 한탄강에 있는 귀웅소로 나왔다는 이야기가 있다. 최근에 이 곳은 도로가 나면서 메워져 지금은 옛 모습을 찾아볼 수 없다.
- 해골 : 재인폭포 서쪽에 있는 골짜기.
- 향로봉(香爐峰) : 지장동 동쪽에 있는 봉우리. 높이 616m. 모양이 향로와 같이 생겼다 하여 지어진 이름이라 한다.
- 향로봉골짜기 : 문바위골 남쪽, 향로에 딸린 골짜기.
- 홀짝골 : 퉁막골 위에 있는 골짜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