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수리
합수리
본래 연천현 북면의 지역으로, 마거리에서 발원하여 합수리의 중앙을 흐르며 임진강에 합류하는 긴 하천이 크게 휘돌아 곡류하므로 ‘수회리(水回里)'라 하였는데, 1895년(고종 32) 지방관제 개정에 따라 상수회리와 하수회리로 분리되었고,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하수회리와 동면에 속해 있던 상수회리를 다시 병합하여 ‘합수리'라 하여 중면에 편입되었다. 해방 이후 38선 북쪽이 되어 공산 치하에 놓였다가, 한국전쟁 후인 1954년 1월 7일 「수복지구임시행정조치법」에 의거하여 행정권이 수복되었다. 그러나 전 지역이 군사분계선과 인접한 민통선 지역으로 현재 출입 영농만 가능한 하나의 법정리 지역이다.
지명유래
- 기와말[瓦村] : 추목정 서쪽에 있던 마을. 예전에 기와집이 있었다 한다.
- 무조래 : 정촌말 동쪽에 있던 마을. 전주 이씨(全州李氏) 광평대군파 후손들이 살았던 곳이다.
- 시랑말[侍郞村] : 정촌말 남쪽에 있던 마을. 고려 때 시랑 벼슬을 역임했던 사람이 살았다 하여 지어진 이름으로, 한국전쟁 전에는 한양 조씨(漢陽趙氏)가 집성촌을 이루었고 부군굿으로도 유명했던 곳이다.
- 양지말[陽村] : 현촌말 동쪽에 있었던 마을. 하루 종일 햇볕이 잘 드는 양지바른 곳이라 하여 지어진 이름이다.
- 염촌말[廉村] : 현촌말 북쪽에 있었던 마을. 한국전쟁 전에는 파주 염씨(坡州廉氏)가 20여 호 집성촌을 이루었던 곳이다.
- 윗말 : 황새말 동쪽에 있던 마을. 정촌말의 위에 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 정촌말[丁村] : 시랑말 북쪽에 있던 마을. 한국전쟁 전에 나주 정씨(羅州丁氏)가 20여 호 모여 살던 곳으로, 매년 9월 9일이 되면 산신제를 크게 올렸다고 한다.
- 현촌말[玄村] : 노재다리 북쪽에 있었던 마을. 한국전쟁 전에 연주 현씨가 30여 호 살았다.
지역명칭 설명
- 군수막고개 : 능골에서 군남면 옥계리의 작은밤골로 넘어다니던 고개.
- 능골[陵谷] : 양지말 동쪽에 있는 큰 골짜기. 고려시대 고분이 많다 하여 지어진 이름이었으나, 일제강점기 때 모두 도굴당했다고 한다.
- 당골[堂谷] : 안골 남쪽에 있는 골짜기. 옛날에 고을 원님이 살던 집이 있었다 한다.
- 돌모탱이[回隅] : 뒷골과 정촌말 사이에 뻗어나온 산부리 끝을 돌아가는 모퉁이.
- 뒷골 : 정촌말의 뒤에 있는 골짜기.
- 무당소 : 삼곶리로 들어가는 노재다리 북쪽에 있는 소.
- 무드리고개[水回里] : 염촌말과 삼곶리 사이에 있는 고개.
- 바늘거리 : 합수리와 마거리 경계에 있는 모퉁이. 지형이 바늘처럼 뾰족하게 생겼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 방아다리 : 정촌말 남쪽, 윗무드리의 중심인 사거리에 있었던 디딜방앗간.
- 봉수지(烽燧址), 봉화뚝 : 바늘거리 동쪽, 산 정상에 있는 봉수지. 높이 218m. 이곳은 조사가 불가능한 지역인 관계로 사용 시기 및 규모를 확인할 수 없다.
- 소롱댕이 : 무당소 위에 있는 큰 웅덩이. 예전에 이 곳에 보(洑)를 막아 삼곶리 지역에 농업용수를 공급했었다고 한다.
- 소리개고개 : 중면의 합수리*삼곶리, 군남면의 옥계리 경계에 있는 고개.
- 소학골[巢鶴洞] : 쪽쪽골 북쪽에 있는 골짜기. 윗무드리와 아랫무드리의 사이에 있다 하여 ‘새골(쇠골)'이라고도 불리웠고 이천 서씨(利川徐氏)가 집성촌을 이루며 살았다.
- 솟을봉 : 당골 동쪽, 연천읍 상리와 경계에 있는 봉우리.
- 순터골 : 작은터골 옆에 있는 골짜기.
- 아랫벌 : 윗무드리에 있는 넓은 벌판. 정촌말 부근에 있는 벌판의 아래에 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 안골 : 시랑말 안쪽에 있는 작은 골짜기.
- 윗종지미 : 순터골 옆에 있는 골짜기. 종지미의 위에 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 작은터골 : 시랑말고개가 있는 골짜기.
- 쟁골고개 : 시랑말에서 작은터골을 거쳐 연천읍 상리의 재궁동으로 넘어가는 고개.
- 종지미 : 윗종지미 서쪽에 있는 골짜기. 종지처럼 생긴 산이 있다 하여 지어진 이름이다.
- 쪽쪽골 : 소학골 남쪽에 있는 골짜기. 작다는 뜻의 옛말인 ‘쪽‘에서 뜻을 따왔다.
- 청룡고개[靑龍峴] : 소학골에서 황새말로 넘어다니던 고개. 적거리에 있는 이양소 묘의 좌청룡 형국에 해당하는 산에 있다 하여 지어진 이름이다.
- 추목정(楸木亭) : 기와말 동쪽에 있는 산등. 가래나무 종류의 큰 정자나무가 있었다 한다
- 황새말 : 추목정 북쪽에 있는 골짜기. 여름철이 되면 황새가 많이 날아와 번식했던 철새도래지가 있던 곳이다.
- 회골[灰谷] : 바늘거리 동쪽에 있는 골짜기. 회를 만들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 중면에 포함된 옛 삭녕면(朔寧面) 개관 삭녕면은 본래 삭녕군 읍내면(邑內面) 지역으로 동변리(東邊里)·서변리(西邊里)·여척리(餘尺里), 하마산리(下馬山里) ·상마산리(上馬山里)·대사동리(大寺洞里) 등 6개 리를 관할하였다. 914년 4월 일 조선총독부 부령 제111호에 의해 행정구역이 축소 폐합되면서 삭녕군 읍내면·동면(東面)·서면(西面)·남면(南面)은 연천군에, 인목면(寅目面)*내문면(乃文面)*마장면(馬場面)은 강원도 철원군에 분리·편입시키면서 읍내면을 연천군의 가장 북쪽에 있다 하여 북면(北面)으로 개명함과 동시에 동변리와 서변리를 병합하여 삭녕리(朔寧里)·하마산리를 고마리(古馬里)로, 대사동리를 대사리(大寺里)로 명칭을 변경하여 삭녕·대사·여척·고마·상마산의 5개 리를 관할하여 오다, 934년 4월 일 「조선총독부경기도령」 제4호에 의해 동면의 도연리(陶淵里)·적음리(笛音里)·진곡리(辰谷里)·어적산리(魚積山里)*적동산리(積洞山里) 5개 리를 편입하여 북면을 삭녕면이라 개칭하고 0개 리를 관할하였다.
- 1945년 해방과 동시에 삭녕면 전 지역이 38선 북쪽에 위치하여 공산 치하에 놓였다가 한국전쟁이 끝난 뒤에도 휴전선을 끼고 완충 지대 및 이북 지역에 속하였으나, 963년 월 일 법률 제1178호인 「수복지구와동인접지구의행정구역에관한임시조치법」에 의거, 삭녕군 0개 리를 연천군 중면에 편입하였다. 이때 중면에 포함된 0개 리 중에서 도연*적음·진곡·어적산·적동산 등 5개 리는 중면의 현 법정리에 해당하고, 삭녕 ·대사·여척리·고마·상마산 등 5개 리는 중면의 법정리였다가 현재는 지명만으로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