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미리
아미리
본래 마전군 군내면 지역으로, 1454년(단종 2)에 편찬된 『세종실록』 지리지에는 ‘답동리(畓洞里)'라 기록되어 있으나, 조선 후기에 아미산의 이름을 따서 ‘아미리'라 개명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인접해 있는 장양리(長楊里)와 냉정리(冷井里)를 병합하여 미산면에 편입되었으나, 1945년 해방과 동시에 38선 북쪽 지역이 되어 공산 치하에 놓였다가 한국전쟁이 끝난 후인 1954년 11월 17일 「수복지구임시행정조치법」에 의거, 행정권이 수복되어 오늘에 이른다.
현재 2개의 행정리, 6개 반으로 이루어져 있다.
지명유래
- 괴고불[高飛洞], 고비 : 여씨동 북쪽에 있는 마을.
- 노른저리[考隱洞] : 윤호 묘 남쪽에 있는 마을. 조선 초 숭의전이 건립된 후 이 곳에 정착한 숭의전감 왕훈(王勳)의 묘가 있다 하여 지어진 이름이라 한다.
- 닷구비 : 백학저수지 동쪽, 해기골 안에 있던 마을. 처음에 5가구가 정착했다 하여 지어진 이름으로, ‘오합동(五合洞)'으로도 불리운다. 한국전쟁 전에는 해주 오씨(海州吳氏)가 집성촌을 이루었던 곳이다
- 두미(斗尾) : 노른저리 남쪽에 있는 마을. 단순히 ‘산골짜기'라는 뜻의 우리 고어 ‘둠‘이 ‘두미'를 그대로 음차한 한자 지명으로 표기해서 ‘斗尾'가 되었다.
- 새말[新村] : 고사리골 입구에 있는 마을. 한국전쟁 이후에 새로 형성되었다 하여 지어진 이름이다.
- 여씨동(呂氏洞) : 고비동 남쪽에 있는 마을. 여씨들이 살았던 곳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 윗찬우물[上冷井洞] : 백학저수지 북쪽에 있는 마을. 찬우물이 있어 지어진 이름이며, 현재 아미 1리에서 가장 큰 마을이다.
- 응달말 : 한국전쟁 전 논골의 음지에 있었던 마을.
- 쟁이 [長楊] : 심덕부 묘 앞에 있던 마을. 옛 마전군 장양리 지역이다.
- 점말[店村] : 망재 북쪽에 있던 마을. 예전에 이 골짜기 안에서 옹기를 구웠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지역명칭 설명
- 거친봉 : 논골 동북쪽, 아미리·마전리·백석리 경계에 있는 봉우리. 지형이 거칠고 험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 고르미 : 윗찬우물 남쪽에 있는 골짜기.
- 고사리골[薇洞] : 새말 북쪽에 있는 골짜기. 예전에 고사리가 많았다고 한다.
- 괴고불다리 : 새말과 괴고불 사이에 있는 콘크리트 다리.
- 낡은터골 : 해기고개 막바지에 있는 골짜기.
- 논골[畓洞] : 도당재 북쪽에 있는 골짜기. 고래실논이 많다 하여 지어진 이름이다. 이 골짜기로 인하여 아미리의 원래 이름이 답동리(畓洞里)였다고 한다.
- 능골[陵洞] : 점말 서쪽에 있는 골짜기. 큰 묘가 있어 지어진 이름이라 하나 현재 지표에는 유적이 확인되지 않고 있다. 일설에는 이 골짜기 안에 태봉(胎峰)이 있었다고 한다.
- 도갓집모퉁이 : 괴고불 동쪽에 있는 산모퉁이. 옛날에 물품을 만들어 도매하는 도가가 있었다 한다. 현재 상여막이 세워져 있다.
- 도당재[都堂山] : 숭의전 동쪽에 있는 산. 예전에 시골 사람들이 자기 고장의 수호신을 위하는 도당이 있었다 한다. 일설에는 이 산의 형상이 거북의 머리와 같다 하여 ‘구수봉(龜首峰)'으로도 불린다.
- 도동박 : 숭의전 서쪽에 있는 개울. 조선 초 숭의전에서 각종 제기와 귀중품을 훔쳐 달아나던 도둑이 밤새 도망쳤으나, 날이 밝고 보니 멀리도 못 가고 이 곳에서 맴돌고 있었으므로, 마을 사람들이 도둑을 잡고 물건을 모두 되찾은 곳이라 한다. 이수광의 『지봉유설』에도 이 고사가 실려 있다.
- 뒷거리개울 : 도당재 북쪽, 논골에서 내려오는 개울.
- 뒷골 : 윗찬우물 마을 뒤에 있는 골짜기. 백학면 두일리의 정문거리로 통한다.
- 망재[望峴] : 봉화봉 서쪽, 백학면 구미리와 경계에 있는 봉우리. 예전에 망을 보았던 곳이라 한다.
- 미나울 : 괴고불 북쪽에 있는 골짜기.
- 박석고개[薄石峴] : 쟁이에서 노른저리로 넘어다니는 고개. 예전에 어떤 사람이 이 고개에 임진강의 호박돌을 깔았다 하여 지어진 이름으로, 지금은 콘크리트로 포장되어 있다.
- 북두고개 : 고사리골에서 광동리의 응달말로 통하는 고개.
- 산제당산(山祭堂山) : 윗찬우물 북쪽, 아미리와 광동리, 백학면 석장리 경계에 있는 산. 높이 130m. 한국전쟁 전까지도 어리미기 주민들이 매년 10월경 산제를 올렸던 곳이다.
- 성황당터 : 괴고불 서쪽 모퉁이의 성황당터.
- 시위논 : 논골 중앙에 있는 고래실논. 항상 물에 잠겨 있어서 비가 많이 오면 강물이 크게 범람하여 물에 잠긴 것을 가르키는 말인 ‘시위'에서 뜻을 따 지어진 이름이라 한다.
- 아미고개[峨嵋峴] : 아미리 작은골에서 마전리로 넘어가는 고개.
- 아미나루 : 아미리에서 삼화리로 건너다니던 임진강 나루.
- 아미산(峨嵋山) : 숭의전 동북쪽에 있는 산. 임진강 수면 위에 솟아 있는 잠두봉 * 숭의전과 아미사가 어우러지는 이 곳의 선경(仙景)이 중국 사천성 아미현 서남쪽에 있는 아미산에 비견할 만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는 설과, 조선 초에 창건된 아미사와 연계되면서 지어진 이름이라는 두 가지 설이 전해 온다. 또한 조선 후기의 지리지에는 마전리에 있던 소금창고 때문인지 ‘염창산(鹽倉山)'으로도 기재되어 있다.
- 약대산(藥大山) : 숭의전 서남쪽, 백학면 구미리와 경계에 있는 산. 높이 142m.
- 약대산약수 : 봉화봉 동쪽, 약대산 중턱에 있는 약수.
- 약대산고개 : 여씨동에서 백학면 구미리의 새둔지들로 넘어가는 고개.
- 어리미기 : 아미 1리 산제당산 아래에 있는 골짜기. 한국전쟁 전에는 광산 김씨(光山金氏), 경주 최씨(慶州崔氏)들이 집성촌을 이루었던 곳이다.
- 어수정(御水井) : 숭의전 입구에 있는 우물. 고려 태조 왕건이 궁예의 신하로 있을 때 개성과 철원을 왕래하면서 중간 지점이었던 앙암사(仰巖寺, 현 숭의전 자리)에서 쉬면서 마셨던 우물이라 하여 지어진 이름이다.
- 염창골큰골 : 조선시대 마전리 당개나루에 있던 골짜기. 소금창고 옆에 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 용못[龍淵] : 종못 위에 있는 못. 『동국여지지』 마전군 산천조와 허목의 기행문에는 이 곳에 대하여 “전설에 의하면 이 곳 수면 위로 용이 나타나면 가뭄이 든다(龍淵俗云有龍見則早)”고 기록되어 있다.
- 용수지(龍水池) : 장재울 안에 있는 큰 못. 용이 등천했다는 전설을 간직한 곳이었으나, 지금은 매몰되어 논으로 변해 있다.
- 움펑자리논 : 장재울 중앙에 있는 움푹 들어간 논. 일제강점기 때에는 저수지를 막았던 논이다
- 의지기터골 : 장재울 막바지에 있는 골짜기. 옛날에 의지기가 살았다 하여 지어진 이름이다. 한국전쟁 전에는 여씨(呂氏)들이 많이 살았다.
- 작은골 : 어수정 동쪽에 있는 골짜기.
- 잠두봉(蠶頭峰) : 숭의전 동쪽, 임진강에 수직으로 솟은 바위봉우리. 그 형태가 누에의 머리와 닮았다 하여 지어진 이름이다. 잠두봉 절벽에는 조선 후기 마전군수를 역임했던 한문홍(韓文洪)의 칠언율시가 새겨져 있고 측백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있다.
- 장재울[長者谷] : 논골 동쪽에 있는 골짜기. 예전에 큰 부자가 살았다 하여 지어진 이름이라 전해 오지만, 원래의 뜻은 ‘작은 산의 마을'이라는 의미의 ‘잔자울'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잔[ 小] + 자[山] + 울[谷] = 잔자울 〉 장자울 〉장재울.
- 쟁이고개[長楊峴] : 노른저리에서 심덕부 묘 앞의 쟁이로 넘어가는 고개.
- 절골 : 능골 안에 있던 골짜기.
- 점터 : 미나울 안에 있는 작은 골짜기. 예전에 옹기점이 있었다 한다.
- 종못[鐘淵] : 숭의전 앞, 임진강에 있는 깊은 소. 명주실 한 꾸러미가 다 들어가는 깊이라 한다. 고려 태조의 원찰이었던 앙암사 경내에 있던 범종이 임진강으로 굴러 물 속에 잠겼는데 그후 국난이 일어나기 직전에 이 못에서 종소리가 울려 퍼져 미리 예견했다고 하여 이 못을 ‘종못'이라 부르게 되었다 한다. 『동국여지지』 등에 의하면 수면이 잔잔한 날 잠두봉 정상에서 임진강을 내려다 보면 그때 강 속으로 잠긴 범종이 보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 해기골 : 닷구비 동남쪽에 있는 큰 골짜기.